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제3차 비상경제점검TF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홈페이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제3차 비상경제점검TF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홈페이지

[투데이에너지 윤철순 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자 국정과제 중 하나였던 ‘기후에너지부’ 신설이 본래 구상과는 다른 형태로 방향이 잡히는 모양새다.

오는 13일 발표 예정인 정부조직 개편안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실을 환경부가 흡수하는 형태의 ‘기후환경에너지부’가 유력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초 별도 부처 신설이 점쳐졌으나 현실적 여건과 행정 효율성을 고려해 기존 환경부의 외연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결론이 모아진 셈이다.

이에 따라 환경부가 에너지 수급을 포함한 에너지정책 전반을 직접 주관하고, 한국전력공사·발전 5사 등 산업부 산하 에너지 공기업들도 대거 환경부로 이관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환경부 중심 에너지정책 설계...“기후중심 일원화” vs “산업진흥 실종”
이번 개편안이 현실화될 경우 가장 큰 변화는 정책의 ‘방향성’이다. 기후 대응이라는 공통 목표 아래 환경부가 산업부의 에너지 기능을 흡수함으로써, 그간 이원화돼 있던 기후·에너지 정책의 통합 설계가 가능해진다.

환경부 한 관계자는 “정책 현장에서 기후는 환경부, 에너지는 산업부로 나뉘어 양쪽 끝단에서 간신히 균형을 맞춰왔던 구조”라며 “이제는 통합된 정책 기획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물관리 기능 이관 당시처럼, 실무자와 업무가 함께 넘어오면 별다른 충돌 없이 정착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정책 일관성과 기후 대응 강화에 대한 기대감도 존재한다.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당초 취지에 부합하려면 산업 진흥 중심의 산업부보다는 환경부 중심이 더 적합하다”는 것이 국정기획위의 설명이다.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가운데)이 지난달 13일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 제공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가운데)이 지난달 13일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 제공

◇한전·발전 5사, 환경부로 가면?...지휘 체계·예산 구조·역할 정립 모두 '대수술' 불가피
그러나 산업부에서 분리되는 에너지 공기업들, 특히 한국전력공사와 발전 5사의 ‘새 둥지’로 환경부가 지목되면서 그 파급력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지휘 체계 변화가 불가피하다. 지금까지는 에너지 산업 전반의 공급·수요 조율과 동시에 전력공급 안정, 산업 연계 등을 산업부가 주도했으나 환경부로 이관되면 탄소중립과 기후정책 기조에 더 무게가 실릴 전망이다.

전력 공급의 효율성보다는 온실가스 감축 등 규제 중심 기조로의 전환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예산 편성 체계도 바뀐다. 현재 한전과 발전사들의 에너지 정책 예산은 산업부 중심으로 설계되지만, 환경부 산하로 재편되면 예산의 우선순위 역시 기후·환경에 맞춰 재조정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공기업의 역할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한전이나 발전 5사는 산업부 내에서 산업 성장과 에너지 안보를 양축으로 삼아 운영되어 왔는데, 환경부 소속이 되면 에너지 산업이라는 본연의 임무가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지난 8일 낙동강 녹조 대응태세 현장을 점검했다./ 환경부 제공
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지난 8일 낙동강 녹조 대응태세 현장을 점검했다./ 환경부 제공

◇산업계 “탈산업화 가속”...환경계 “기후 위기 대응 제대로 하려면 필요”
산업계는 일제히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규제 중심의 환경부가 에너지 정책을 주도하면 산업과의 연계가 단절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한국재생에너지산업발전협의회는 “환경부는 규제를 중심으로 설계된 부처이기 때문에 에너지정책이 환경부에 포획되면 제대로 된 에너지 산업 진흥 정책을 펴기 어렵다”고 비판한다.

협회는 “현 체계보다 오히려 후퇴한 개편안”이라며 “에너지 정책은 산업 성장과의 시너지가 중요한데, 기후 중심의 환경부가 그것을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학계도 유사한 견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산업을 고려하지 않는 기후 목표는 제조업 경쟁력을 무너뜨릴 수 있다”며 “산업부에 기후 기능을 붙이는 방식이 더 합리적”이라고 제안했다.

반면 기후환경계에서는 오히려 “기후 대응 중심의 정합성 있는 개편안”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녹색연합은 “관련 산업 진흥이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이 최우선 목표여야 한다”며 산업부 중심의 에너지정책이 가져온 탄소 감축 지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에너지 통합의 ‘진정성’은 어디로...“공약 후퇴” 비판도
기후에너지부 신설이라는 공약 자체가 사라지는 데 대한 아쉬움도 크다. 별도 부처로 신설될 경우 갖출 수 있었던 독립성, 정책 집중력, 명확한 정체성이 흐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의찬 세종대학교 교수는 “원전처럼 환경과는 별도의 관리 체계가 필요한 영역을 환경부가 주도할 경우 정책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며 “기후와 에너지를 통합하려면 오히려 별도 부처 신설이 더 합리적”이라고 했다.

김성환 환경부 장관도 “1안(기후환경에너지부)과 2안(기후에너지부 신설) 외 제3안도 가능하다”며 여지를 남긴 상태다.

이번 개편은 단순한 부처 구조 변경을 넘어,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 및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좌우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에너지 공기업들의 실질적인 역할 변화, 규제와 진흥 사이의 균형, 정책 설계의 일관성 등 복잡한 숙제가 남은 가운데 대통령실의 선택이 주목된다.

한편, 이런 상황에서 국정기획위원회의 정부 조직 개편안 발표가 당초 예상보다 늦춰질 가능성이 정치권과 관가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이 같은 관측은 에너지 정책 이관, 주요 현안에 대한 부처 간 이견 등 복잡한 쟁점들이 남아 있는 상황과 한미 정상회담 이후 경제 현안 대응을 우선시하려는 대통령실의 판단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여당이 국회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어 개편안 통과에는 큰 무리가 없다는 점에서, 시기 조절이 가능하다는 현실적 고려도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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