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25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호반그룹 사옥에서 열린 발표 ‘뉴 대한 인 호반(New Taihan In Hoban)’ / 대한전선제공
2021년 5월 25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호반그룹 사옥에서 열린 발표 ‘뉴 대한 인 호반(New Taihan In Hoban)’ / 대한전선제공

[투데이에너지 박명종 기자] 2021년 5월 25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호반그룹 사옥에서 열린 발표회의 명칭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선언이었다. ‘뉴 대한 인 호반(New Taihan In Hoban)’. 호반그룹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 행사는 대한전선의 제2의 창업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대한전선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새로워진’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수주 잔고는 3배 이상 증가했고, 매출은 연평균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하고 있으며, 전 세계 케이블 시장에서 주목받는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했다. 

1941년 국내 1호 전선회사로 출발해 84년간 한국 산업발전과 궤를 같이해온 대한전선이 호반그룹이라는 든든한 후원자를 만나 글로벌 톱티어를 향한 새로운 도약을 시작한 것이다.

대한전선의 역사는 곧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축소판이다. 1941년 일제강점기 전선 기술이 전무했던 조국에서 최초로 전선을 생산하며 한국전력산업의 토대를 마련했다. 해방 이후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국내외 전력 및 통신망 구축의 주역을 맡아온 대한전선은 명실상부한 국가기간산업의 선두주자였다. 하지만 영광의 세월이 영원할 수는 없었다. 

2000년대 들어 무리한 사업 확장과 글로벌 금융위기가 겹치면서 회사는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채권은행의 관리를 받게 되었고, 2015년에는 사모펀드에 매각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한국 전선산업의 자존심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전환점은 2021년 5월에 찾아왔다. 호반그룹이 대한전선을 인수하면서 회사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호반그룹의 안정적인 재무지원과체계적인 경영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대한전선은 비로소 본래의 실력을 되찾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글로벌 시장 정복의 서막 

대한전선의 글로벌 시장 공략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싱가포르에서 나오고 있다. 회사는 현재 싱가포르 400kV급 이상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국내 전선업체 중 유일하게 싱가포르에 400kV 전력망을 턴키로 공급하고 있다. 최근에는 싱가포르 전력청이 발주한 1,100억 원 규모의 400kV 초고압 전력망 공급 턴키 프로젝트를 신규 수주했다. 

미국 시장에서의 성과는 더욱 드라마틱하다. 대한전선은 2024년 미국에서 7,300억 원 이상의 신규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대한전선이 북미 시장에 진출한 이후 역대 최대 실적으로, 이전 최고기록인 2022년의 연간 수주액 약 4,000억 원을 크게 상회하는 성과다. 미국은 전 세계 전력망 호황기를 견인하는 대표적인 국가다. 노후 전력망에 대한 교체 수요와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케이블 업체들에게는 거대한 기회의 땅이다. 특히 2024년 9월에는 900억 원 규모의 320kV HVDC 케이블 시스템, 500kV HVAC 프로젝트의 케이블 공급자로 선정되며 미국 HVDC 시장에 처음으로진출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유럽과 중동 시장에서도 주요 공급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24년 12월에는 스웨덴에서 1,100억 원 규모의 420kV급 초고압 전력망 프로젝트를 수주했고, 2025년 1월에는 영국에서 1,000억 원 규모의 400kV급 노후 전력망 교체 프로젝트를 추가로 확보하며 유럽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특히 영국의 주요 전력 송배전 기업인 내셔널그리드와 ‘HVDC 케이블 시스템’ 프레임워크 계약을 체결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를 통해 대한전선은 약 213억 파운드(한화 40조 원) 규모의 사업 참여 기회를 확보했다.

국내 유일의 해상풍력용 CLV  팔로스 호 / 대한전선 제공
국내 유일의 해상풍력용 CLV 팔로스 호 / 대한전선 제공

해상풍력 시대의 게임체인저를 꿈꾸다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해상풍력은 가장 주목받는 신재생 에너지원이다. 바다 위에서 생산된 전력을 육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해저케이블이 필수적이다. 이는 대한전선에게 새로운 성장 동력이자 글로벌 시장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해상풍력 발전 용량은 2030년까지 현재의 10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해저케이블시장도 연평균 15% 이상의 성장이 예상된다. 수십조 원 규모의 거대한 시장이 눈앞에 펼쳐지고있는 것이다.

해저케이블 수요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대한전선은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 2025년 6월에는 해저케이블 1공장을 종합 준공하며 해상풍력용 내·외부망 생산이 모두 가능해졌다. 더 야심찬 계획은 해저케이블 2공장이다. 2025년 7월 HVDC 해저케이블 생산이 가능한 해저케이블 2공장 1단계 건설에 4,972억 원을 투자하기로 의결했다. 이는 회사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투자로, 미래 성장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해저 2공장은 640kV급 HVDC(초고압직류송전) 및 400kV급 HVAC(초고압교류송전) 해저케이블 생산이 가능하며, 초고압 케이블 생산의 핵심 설비인 VCV(Vertical Continuous Vulcanization, 수직연속압출) 시스템 등 최첨단 설비를 갖출 예정이다. 해저 2공장은 연내 착공 할 예정으로, 2027년 가동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생산설비 구축과 함께 대한전선은 해저케이블의 전체 밸류체인을 구축하고 있다. 해저케이블 시공 전문 법인인 ‘오션씨엔아이㈜’를 인수하며 해저케이블의 설계부터 제조, 운송, 시공 및 엔지니어링, 유지보수에 이르는 전체 밸류체인의 직접 수행이 가능해졌다.

국내 유일의 해상풍력용 CLV(Cable Laying Vessel) 포설선인 팔로스(PALOS)도 확보해 운용중이다. 특히 영광낙월 해상풍력 사업의 해저케이블 시공에 팔로스호를 투입해 서해안 해역에 특화된 CLV의 성능을 입증한 바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해저케이블의 턴키 경쟁력을 갖춘 기업은 소수에 불과하다. 이러한 전체 밸류체인 구축을 통해 대한전선은 세계 5위권 수준의 해저케이블 토탈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HVDC(초고압직류송전) 분야에서 대한전선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회사는 대규모 송전이 가능한 HVDC 케이블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개발하여 전압형 XLPE, 전류형 XLPE, MI-PPLP 등 다양한 절연방식의 HVDC 케이블 시스템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2022년 국내 최초로 500kV XLPE 전류형 HVDC 육상 케이블 시스템 개발과 KEMA 인증을 취득했고, 2023년에는 525kV XLPE 전압형 HVDC 케이블 시스템 개발 및 인증 획득에 성공했다.

525kV XLPE 전압형 HVDC 케이블 시스템은 특히 주목받는 성과다. 도체 단면적 3,000SQ(㎟)로 설계하고 도체 허용 온도를 90℃ 이상까지 올려 인증을 완료했는데, 이는 국내 최초일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개발 성공 사례를 찾아보기 쉽지 않은 수준이다. 

미래 전망과 도전 과제

대한전선의 미래는 밝다. 전 세계적인 전력망 투자 확대, 해상풍력 시장의 급성장, 탄소중립 정책 가속화 등 회사에게 유리한 외부 환경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해저케이블과 HVDC 시장은 향후 10년간 연평균 10% 이상의 성장이 예상되는 고성장 분야다. 대한전선이 이 분야에서 구축한 기술력과 생산능력은 지속적인 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글로벌 사업 확장을 위해 해외 생산법인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남아공, 베트남 등 현재 운영 중인 해외 생산법인의 설비를 증설하고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남아공 생산법인 M-TEC은 CCV라인(현수식 연속 압출 시스템) 증설과 MV/LV(중저압) 케이블 생산 설비를 확충 중이다. 베트남 생산법인 Taihan VINA는 400kV 초고압 케이블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2027년 가동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2024년 9월에는 쿠웨이트 현지의 대표적인 건설 및 무역 기업인 랭크(Rank)社와 공동 투자해 만든 쿠웨이트 최초의 광통신 케이블 생산 법인‘대한쿠웨이트(Taihan Kuwait)’ 공장을 준공하며 본격적인 제품 생산에 돌입했다.

과거 대한전선 공장 내부 모습 / 대한전선 제공
과거 대한전선 공장 내부 모습 / 대한전선 제공

84년 전통이 만든 새로운 전설

1941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조국의 산업발전을 꿈꾸며 케이블을 생산해왔던 대한전선, 그로부터 84년이 지난 지금, 대한전선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호반그룹과의 만남은 대한전선에게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안정적인 재무기반과 체계적인 경영시스템을 바탕으로 회사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성장을 이뤄내고 있다.

송종민 부회장은 올해 창립 84주년 기념사에서 “올해 해저케이블 1공장의 종합 준공과 2공장 착공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글로벌 해상풍력 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포부가 아닌, 구체적인 투자와 기술개발을 바탕으로 한 실현 가능한 목표다.

84년 전 작은 전선회사로 시작된 대한전선이 이제는 글로벌 케이블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호반그룹이라는 든든한 파트너와 함께 써내려가고 있는 새로운 성장 스토리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대한전선의 진정한 전성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전선 회사로 시작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처럼 새로운 100년을 향한 대한전선의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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